한국 수채화의 거장(巨匠), 강연균 화백!
박준호·차지혜 기자입력 : 2022. 02. 07(월) 08:00
강연균, 누드(Nude), 1982, mixed media on paper, 55.5×37.5cm
‘60년 외길’ 수채화가 강연균
고교시절 홍익대 주최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1960년) 수채화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이래 강연균(1941~) 화백은 줄곧 수채화에만 매진해 왔다. 그의 그림 테마는 늘 주위에 존재한 것들이었고 멀리 있거나 허구적･환상적인 것들은 잘 그리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소묘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태어났던 남도의 땅과 인물(누드), 정물, 풍경 등을 수채로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은 향토적 서정을 기초로 사회의식과 현실감정이 깃든 사실주의로, 민족적 정서를 품은 회화로 승화 발전되어 왔다. 또한 한국적･동양적 사실주의를 부단히 추구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의 삶과 예술
"난 주로 수채화를 그려왔고 사실주의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간혹 비구상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형식을 취해보기도 하나 역시 내겐 어울리지 않고 어색할 뿐이다. 1980년 광주 시련을 치르면서 난 소위 역사의식을 깨우칠 수 있었고 '민중'을 껴안게 되었다. 어려운 사회과학에서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역사를 배웠다. 한때 난 내 작품을 통해 외부를 향한 저항적 메시지를 표현해냈다. 민중미술이란 단어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어쨌건 민중의 삶을 그렸고 광주의 아픔을 그렸다. 예술은 내가 딛고 선 사회나 삶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은 그저 예술인가 하는 갈등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예술은 무슨 '주의'나 ‘이념’ 따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림을 가치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감동'이기 때문이다."(작가노트)
수채화로 만들어낸 여체(女體)
강연균의 누드는 탁월한 조형감각을 드러내준다. 스승 오지호가 강조했던 정확한 소묘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수채화 물감만이 자아낼 수 있는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수채화의 물기를 ‘물맛’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마치 동양화에서 물의 양을 조절하여 먹물의 농담(濃淡)을 통해 회색조 색깔부터 진한 검정까지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색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수묵의 기법은 본 작품 <누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곳곳에서 물의 양을 조절해 명암을 주고 배경과 여체 모두를 어두운 분위기의 수묵으로 처리하면서도 겨잣빛이 드리워진 여체에서는 묘한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배경 속 여인들의 실루엣(silhouette)을 희미하게 드러내는 수채 기법도 작가만의 노하우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속에서도 작가 특유의 윤곽선과 ‘물맛’의 조절을 통해 여체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부각시킨 수작(秀作)이다.
‘친숙한 수채화’로 우리 곁에 늘 남아있길
유년시절 우리가 미술시간을 통해 처음 실습한 그림은 수채화였다. 주름 잡힌 접이식 물통, 그 안에 뒤엉켜 꽂혀 있던 붓, 칸마다 수채물감을 짜놓고 엄지손가락을 끼워 사용했던 팔레트(palette)가 생생히 떠오른다.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도화지에 그린 수채화 한 점 쯤은 집안 벽지에 붙여져 있었고, 야외에서 열린 사생 대회에서도 수채화로 실력을 뽐냈다. 이처럼 수채화는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와 있었다. 그림의 입문 단계에서 주로 수채화를 통해 실습하지만, 수채화가 유화보다 그리기 쉽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화는 채색 후 물감을 덧발라 잘못 그린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반면 수채화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야만 완성시킬 수 있다. 수채화는 물의 양을 조절해 농담표현이 가능하여 동양화인 수묵담채화의 멋스러움을 현대적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서양화의 소재를 대상으로 동양화적 기법을 통해 그려낸 수채화는 동서양의 조화로움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곁에 친숙하게 들어와 있는 수채화를 묵묵히 지키고 그려온 화가는 흔치 않다. 강연균 화백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우직하게 수채화가의 길을 걸어옴으로써 ‘한국 수채화의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유화와 단색화(Dansaekhwa)가 대세인 화단에서 수채화만을 고집해 일가(一家)한 강 화백의 집념과 열정을 응원한다. 향후 제자들을 통해 수채화가의 명맥이 이어지고, 수채화는 지금처럼 우리 곁에 친숙한 그림으로 늘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프로필] 조선대학교 미술학부 졸업 광주시민예술대상 보관문화훈장 중국 노신미술대학 명예교수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역임 전남일보 문화부 기자
고교시절 홍익대 주최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1960년) 수채화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이래 강연균(1941~) 화백은 줄곧 수채화에만 매진해 왔다. 그의 그림 테마는 늘 주위에 존재한 것들이었고 멀리 있거나 허구적･환상적인 것들은 잘 그리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소묘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태어났던 남도의 땅과 인물(누드), 정물, 풍경 등을 수채로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은 향토적 서정을 기초로 사회의식과 현실감정이 깃든 사실주의로, 민족적 정서를 품은 회화로 승화 발전되어 왔다. 또한 한국적･동양적 사실주의를 부단히 추구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의 삶과 예술
"난 주로 수채화를 그려왔고 사실주의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간혹 비구상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형식을 취해보기도 하나 역시 내겐 어울리지 않고 어색할 뿐이다. 1980년 광주 시련을 치르면서 난 소위 역사의식을 깨우칠 수 있었고 '민중'을 껴안게 되었다. 어려운 사회과학에서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역사를 배웠다. 한때 난 내 작품을 통해 외부를 향한 저항적 메시지를 표현해냈다. 민중미술이란 단어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어쨌건 민중의 삶을 그렸고 광주의 아픔을 그렸다. 예술은 내가 딛고 선 사회나 삶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은 그저 예술인가 하는 갈등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예술은 무슨 '주의'나 ‘이념’ 따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림을 가치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감동'이기 때문이다."(작가노트)
수채화로 만들어낸 여체(女體)
강연균의 누드는 탁월한 조형감각을 드러내준다. 스승 오지호가 강조했던 정확한 소묘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수채화 물감만이 자아낼 수 있는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수채화의 물기를 ‘물맛’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마치 동양화에서 물의 양을 조절하여 먹물의 농담(濃淡)을 통해 회색조 색깔부터 진한 검정까지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색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수묵의 기법은 본 작품 <누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곳곳에서 물의 양을 조절해 명암을 주고 배경과 여체 모두를 어두운 분위기의 수묵으로 처리하면서도 겨잣빛이 드리워진 여체에서는 묘한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배경 속 여인들의 실루엣(silhouette)을 희미하게 드러내는 수채 기법도 작가만의 노하우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속에서도 작가 특유의 윤곽선과 ‘물맛’의 조절을 통해 여체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부각시킨 수작(秀作)이다.
‘친숙한 수채화’로 우리 곁에 늘 남아있길
유년시절 우리가 미술시간을 통해 처음 실습한 그림은 수채화였다. 주름 잡힌 접이식 물통, 그 안에 뒤엉켜 꽂혀 있던 붓, 칸마다 수채물감을 짜놓고 엄지손가락을 끼워 사용했던 팔레트(palette)가 생생히 떠오른다.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도화지에 그린 수채화 한 점 쯤은 집안 벽지에 붙여져 있었고, 야외에서 열린 사생 대회에서도 수채화로 실력을 뽐냈다. 이처럼 수채화는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와 있었다. 그림의 입문 단계에서 주로 수채화를 통해 실습하지만, 수채화가 유화보다 그리기 쉽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화는 채색 후 물감을 덧발라 잘못 그린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반면 수채화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야만 완성시킬 수 있다. 수채화는 물의 양을 조절해 농담표현이 가능하여 동양화인 수묵담채화의 멋스러움을 현대적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서양화의 소재를 대상으로 동양화적 기법을 통해 그려낸 수채화는 동서양의 조화로움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곁에 친숙하게 들어와 있는 수채화를 묵묵히 지키고 그려온 화가는 흔치 않다. 강연균 화백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우직하게 수채화가의 길을 걸어옴으로써 ‘한국 수채화의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유화와 단색화(Dansaekhwa)가 대세인 화단에서 수채화만을 고집해 일가(一家)한 강 화백의 집념과 열정을 응원한다. 향후 제자들을 통해 수채화가의 명맥이 이어지고, 수채화는 지금처럼 우리 곁에 친숙한 그림으로 늘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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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균, 아기 업은 소녀, 1978, watercolor on paper, 42×33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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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균 화백 |
[작가 프로필] 조선대학교 미술학부 졸업 광주시민예술대상 보관문화훈장 중국 노신미술대학 명예교수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역임 전남일보 문화부 기자
박준호·차지혜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