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유래없는 초박빙 접전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당선인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정치 데뷔전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역대 보수정당 후보 중 호남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건 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임기 말 지지율, 170석 거대 여당의 배경을 등에 업고서도 0.73%차로 아깝게 패배했다. 호남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세를 확인한 것이 소득일 순 있으나, ‘그럼에도’ 이기지 못한 것에 지역민들은 안타까움 반, 원망 반의 반응이다. 대한민국 정치시계는 이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경선 통과가 곧 당선이나 다름 없는 광주·전남에선 민주당의 대선 후속 대책이 주목받고 있다. 패배 후 몸을 추스른 민주당이 호남을 견고히 수성할 수 있을까.

발빠른 비대위 체제 전환 패배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빠르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송영길 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선대위 해단식 이후 1시간 회의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전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재로 전환 되는데, 지도부 총사퇴에 따라 원내대표인 윤호중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겸하게 됐다. 다만 윤 원내대표의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데다, 원내대표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부·여당과의 협의까지 추진해야 하기에, 3월 말에 차기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윤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직책에 집중한다. 민주당은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6월 지방선거 이후까지 비대위 체제를 이어가기로 확정했다. 차기 원내대표는 별도의 입후보 없이 원하는 후보를 각자 적어 과반을 얻는 후보가 나올때가지 반복 투표하는 ‘콘클라베’ 방식으로 뽑기로 했다. 13일 오전엔 기자회견을 열어 비대위 인선을 발표했다.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인 박지현(26) 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공동비대위원으로 임명했고, 비대위원으로는 김태진 전 광주 선대위 공동위원장, 권지웅 전 청년선대위원장, 채이배 전 선대위 공정시장위원장, 배재정 전 의원, 조응천, 이소영 의원이 합류했다. 민주당의 빠른 비대위 전환은 지방선거 대비 이외에도 당내 분열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목적도 엿보인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소재부터 이후 당권 다툼까지, 선거 이후 나올 잡음이 나올 여지를 줄이고자 한 것으로 풀이 된다. 다만,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한 김동연 후보의 정당 새로운 물결 측은 “윤 원내대표는 당내 2인자이자 이번 선거 공동선대책위원장을 맡았기에 정치개혁에 맞찌 않은 인물”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윤 비대위원장이 당 수습과 지방선거 대비에 어느 정도 역량을 보일지도 미지수다. 이 때문에 대선 패배 직후부터 이재명 후보나 이낙연 선대본부장의 역할론도 수면 위로 떠올랐었다.

10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후보

상반된 선거 해석, 이재명의 역할은 대통령 선거 역대 최소득표차 패배에 민주당 내에서도 상반된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개인기로 접전을 만들어냈다는 해석과, 반대로 이 후보 본인의 역량부족과 스캔들이 한계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선대위 일각에선 “그렇게 원팀을 외쳤지만 도와준 사람은 얼마 없었다”며 그간 일부 친문의원들과 586의원들이 선거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의견을 내비쳤고, 반대로 한 친문계 중진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가 선대본부장까지 맡으며 도와주고, 임기말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고인데도 진 것은 이 후보의 한계”라고 선을 그었다. 이 후보의 개인역량 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오히려 접전까지 따라붙게 한 원동력이라는 평가다. 지상파 출구조사에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25%가 윤석열을 선택했기에, 이재명 후보가 친문 유권자를 보듬지 못한 것이 초접전 패배의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이 같은 상반된 해석 속에서도 이재명 후보의 역할론 제기되었다. 패배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킨 대선후보를 이대로 퇴장시킬 순 없다는 이야기다. 송영길 대표는 지도부 사퇴 선언 이후 이재명 후보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했음을 밝혔다. 고영진 수석대변인은 “송 대표가 이 후보에게 전화해 상임고문으로서 향후 당에 여러 기여를 해 달라 부탁했다고 이 후보가 수락해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후보는 대선 정국을 밑거름 삼아 향후 자신만의 세력 구축에 나설 수 있을 것을 보인다. 한 매체와의 라디오 방송에서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휴식기를 가진 후 민주당에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고,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보궐선거 등으로 국회에 입성하고 당대표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선 윤호중 원내대표 대신 이재명 후보가 비대위를 이끌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두관 의원은 “윤호중 비대위로는 검찰의 칼날도, 지방선거 승리도 보장하기 힘들다”며 “이 전 지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혁신하고 지방선거를 지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고 아픔과 절망도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당장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건 가혹할 뿐만 아니라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아내 김혜경씨의 불법 의전 의혹 등에 대해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에 이재명 후보의 본격적인 등판이 언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낙연, 호남 대신 미국행 대통령 선거 직후 이낙연 선대본부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엇갈린 예측이 나왔으나 그의 선택은 미국행이었다. 광주·전남에 이낙연 계로 분류되는 의원들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많기에 휴식기를 가지더라도 물밑에서 지원하지 않을까하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평소 관심이 많던 국제정치에 대한 공부와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고민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의 미국행 선택은 한동안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이 전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과 이재명 후보 세력 간의 당권 다툼이 생길 수도 있기에, 사전에 논란을 차단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또한 이 전 대표가 향후 대권에 재도전한다면, 이른 시기부터 정치적 움직임은 피로감을 줄 수 있기에 휴식기를 가진후 1,2년 뒤에 복귀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더군다나 대선 기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선거운동에 매진했기에, 그의 미국행이 휴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28일간 도합 85차례의 유세와 간담회, 회의, 지지 선언을 열었고, 자신의 정치적 텃밭인 호남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다만 이 전 대표가 그간 친문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왔기에, 친문 유권자들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변수로 여겨진다.



본격적인 지방선거 레이스 민주당의 야성은 살아날까 안타까운 석패를 호남유권자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초접전 대선을 만든 1등 공신은 호남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일 것이다. 선거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호남에서 2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기로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이재명 후보가 광주에서 84.82%, 전남에서 86.10%를 득표하여 각각 12.72%, 11.44%를 득표한 윤석열 당선자를 크게 앞질렀다. 광주·전남의 선거 결과는 민주당 뿐 아니라, 지방선거 입후보예정자들 역시 크게 고무시켰다. 민주당 전남도당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입후보 예정자들에게 투표소를 배정하고, 해당 투표소의 투표율과 득표율을 지방선거 공천에 반영하는 내용의 투표소 책임제를 시행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의 개인 홍보를 모두 멈추고 대통령 선거에 당의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함으로, 실제로 많은 예비후보들이 현지에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위해 발로 뛰어왔다. 광주·전남의 투표율이 각각 81.5%와 81.1%로 전국 1.2위를 차지한 만큼, 예비 후보들에게 메리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대선 이후 지도부가 사퇴한 만큼 공천 기준이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 광주·전남의 득표율이 높은 만큼 여전히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지역 공식이 유효할 것으로 보이나, 2개월 뒤에도 같은 지지율을 유지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호남에서 이재명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줬음에도 패배한 결과가 지지층 재결집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반대로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호남 소외론에 대한 우려 등의 이유로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정현의 당선과 국민의당 돌풍이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 순천·곡성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서갑원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박근혜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 의원의 당선이 큰 이변으로 보였으나 정작 지역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였다. 이미 이 의원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39.7%의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만큼, 언제든 광주·전남에서 의원 뱃지를 달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서갑원 후보에 대해 순천 시민들의 비토 정서가 존재했으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민심을 살피지 않은 공천이 이 의원의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안철수 돌풍으로 인해 호남 의석수를 국민의당이 휩쓸었다. 단순히 호남에서의 선전뿐 아니라 비례대표까지 13석을 얻는 등, 당시 오랜 기간 진행된 양당 체제에 대한 불만 섞인 민심을 잘 담아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 국민의당 돌풍을 미처 잠재우진 못했고, “비례는 국민의당을 찍더라도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어달라”는 ‘전략적 투표’ 홍보가 먹혀들어,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선전하여 20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으로 선거에 나서게 된다. 국민의힘은 역대 최고 득표율을 배경 삼아 지방의회 진입을 노릴 수도 있으며, 지역에 기반을 둔 정의당과 진보당의 선전도 무시할 순 없다. 비대위 체제에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보이며 지방선거 경선 단계에서 얼마나 좋은 인물들을 가려내는지에 따라 지역 유권자들이 다시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당연히 여기고, ‘도로 민주당’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정현과 국민의당 돌풍은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