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추진할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방 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게 하고 살게 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동안 구호에 그쳤던 ‘지방시대’를 이제는 구체적인 제도와 예산, 그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다. 지역에 방문한 사람들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지 않고 머무르고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정책 설계는 정부가, 실행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맡아 함께 만들어가는 모델을 제시했다.

데이터는 나침반, 돈은 연료… 지방시대를 움직이는 힘
지방시대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엔진은 바로 ‘정확한 데이터’와 ‘똑똑한 예산’이다. 정부는 그동안 주민등록 인구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지역의 숨은 활력을 찾아내기 위해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실제 거주 인구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머물고 돈을 쓰는지를 분기별로 집계하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통해 각 지역은 계절, 행사, 날씨에 따라 방문객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언제 어디서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이제는 막연한 추측이 아닌, 정확한 숫자를 바탕으로 방문객을 더 오래 머물게 할 정책을 설계할 중요한 근거를 갖게 된 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생활인구’ 데이터가 지역에 쓰이는 예산(보통교부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이다. 2025년부터는 지역의 실제 활동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받는 예산 규모가 달라진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역의 취약 시간대를 찾아내 체류형 관광 상품을 개발하거나, 숙박과 교통 편의를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하는 지역이 재정 지원에서 더 유리해진다. 이와 함께 10년간 매년 1조 원 규모로 지원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역시 중요한 연료다. 이 기금을 단기적인 행사에 낭비하지 않고, 주거·일자리·교육·돌봄 같은 핵심 분야들을 촘촘하게 엮는 장기적인 계획에 투자하는 지역일수록 더 많은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를 끌어낼 수 있게 된다. 데이터로 증명한 곳에 돈이 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이 중심… 살 곳, 즐길 것, 관계를 촘촘히 엮는다
결국 사람이 떠나지 않고 오히려 찾아오게 만들려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그 시작은 단연 ‘집’이다. 정착 초기에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주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월세 보조, 전세 이자 지원은 물론, 빈집을 고쳐 공공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된다. 특히 청년, 신혼부부, 고졸 취업자, 장기 근로 외국인 등 각 대상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통해 정책의 효과를 높인다. 여기에 보육, 교통 같은 생활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고, 인근 대학이나 기업과의 취업 연계까지 이어진다면,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는 확신은 더욱 커진다.

주말 낮에만 북적이고 평일 밤이면 텅 비는 도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름다운 야간 경관, 다채로운 공연, 도심 산책로나 작은 동네 서점, 심야 클래스처럼 ‘밤에도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는 콘텐츠를 촘촘히 엮어야 한다. 또한 스포츠 대회나 생활 체육 리그를 연중 꾸준히 유치하면 숙박, 식음료, 교통 산업이 함께 살아나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단순히 스쳐 가는 방문객을 넘어, 주소를 옮기지 않아도 지역과 꾸준히 관계를 맺는 ‘관계인구’를 늘리는 노력도 병행된다. 고향사랑기부제를 단순한 답례품 경쟁이 아닌, 기부자들이 지역의 도서관 건립이나 청년 창업 공간 조성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는 통로로 활용하면, 그들은 지역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다. 농촌과 제조업 현장의 인력난을 해결할 외국인 근로자 역시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지역의 새로운 ‘이웃’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숙소와 안전, 언어 교육은 물론 자녀 교육까지 포함한 통합 지원 체계를 갖춰나갈 계획이다.

낡은 칸막이를 허물다… 규제 혁신과 초광역 협력
지역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낡은 규제의 벽과 행정 구역의 칸막이를 허무는 일이 시급하다. ‘기회발전특구’는 그 핵심 수단이다. 기업들이 지역의 강점을 살려 마음껏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세금, 입지, 인력 관련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어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한곳에 모여 시너지를 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여러 지자체가 손잡고 경계를 넘나드는 ‘초광역 협력’도 본격화된다. 교통, 주거, 의료, 문화 같은 생활권을 하나의 도시가 아닌 여러 도시가 함께 공유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인근 도시들을 잇는 광역 교통망을 확충하면 작은 도시에 살더라도 큰 도시의 병원이나 문화 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사는 범위’가 넓어지면 작은 지역의 매력도 덩달아 커진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성공하려면 정부의 설계만으로는 부족하다. 행정이 방향을 제시하면, 지역 주민, 상인, 기업, 대학이 각자의 자리에서 실행 계획을 함께 만들어가고, 지역 언론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검증하고 좋은 사례를 널리 알리는 협력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지방시대’ 정책은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 데이터는 지역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도구가 되고, 새로운 제도는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며, 이 길을 다양한 사람과 참여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든든한 집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빈틈없는 돌봄이 일상을 받치며, 희망찬 교육과 일자리가 내일을 약속한다면, 떠나려는 발길은 멈추고 다시 돌아오는 귀향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오게 하고 싶고, 살고 싶은’ 지역의 꿈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