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작품

“글씨는 곧 그 사람입니다(書如其人).” 붓 한 자루에 자신의 인품과 삶을 담아내는 서예가, 양찬호 작가. 군인의 길을 걷다 서예가로 전향한 그의 독특한 이력은 묵향처럼 깊고 진한 울림을 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 초대작가이자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으로 그 실력을 증명해 온 그를 만나 서예와 함께한 인생의 궤적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붓과의 인연 양찬호 작가와 서예의 첫 만남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는 필체가 좋아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은 어린 아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글씨를 쓸 때마다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레 초등학교 특별활동 서예부로 향했다. 당시 관내 서예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재능의 싹을 틔운 그는 대학 시절 직접 서예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전국대학생서예휘호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글씨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대학 졸업 후 학사장교로 임관하며 그는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서예와의 인연은 군에서도 계속되었다. 서예를 잘 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21사단 대표로 진중창작품 공모전에 출품하게 되었고, 서예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순간은 그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에 보람이 있겠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대위로 전역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시련을 딛고 얻은 깨달음, 대한민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서다 서예가로 전향한 후, 그는 수많은 전국서예공모전에 출품하며 입상 경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써야 하는 문경새재 전국휘호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해진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경험은 그에게 좌절이 아닌 새로운 다짐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전국의 현장휘호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하며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뼈를 깎는 정진의 시간은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님의침묵서예대전 대상(대통령상)을 시작으로 5.18전국휘호대회 대상(국무총리상), 대한민국정수서예문인화대전 정수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개천예술제전국휘호대회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그에게 풍부한 창작의 자양분이 되었고, 마침내 서예계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밑거름이 되었다. 수많은 시상대 위에서 그는 붓끝으로 자신의 길을 증명해 보였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에 인품을 담다 양찬호 작가는 전서(篆書), 예서(隷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 오체(五體)에 모두 능하지만, 특히 예서체의 전통적인 미감에 깊이 매료되어 주로 예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서체를 선택하기에 앞서 모든 서체의 법첩(法帖)을 수없이 반복하며 임서(臨書)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본에 충실한 공부를 통해 각 서체의 본질을 꿰뚫고, 그 위에 자신만의 미감을 더하는 것이다.

그의 서예 철학은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처럼, 글씨를 통해 인품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화선지 위에 펼쳐지는 그의 필체는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넘어, 스스로를 갈고닦는 수행의 과정이자 인품의 발현인 셈이다.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서예 교육, “서예는 평생의 동반자” 현재 그는 고향인 곡성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곡성군 평생학습 강좌, 곡성향교, 옥과농협 등에서 일반부를 지도하고, 초·중등학교 방과후학교 강사로 활동하며 미래 세대에게 서예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일반부 학생들 모두 본인이 좋아서 취미로 공부에 임하다 보니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후학들에게 서예가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이 아니라, “혼자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라고 강조한다. 고요히 붓을 들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예술가, “나만의 작품을 보여줄 그날을 위해”

수많은 영예를 안았지만, 양찬호 작가는 여전히 배움에 목마르다. 그는 아직 개인전을 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직 서법에 대해 공부가 부족해 나의 작품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높은 예술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정진하다 보면 나만의 작품을 보여줄 그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군인의 길에서 서예가의 길로, 그의 인생은 대담한 선택과 묵묵한 정진의 시간으로 채워져 왔다. 붓 한 자루에 자신의 삶과 철학을 담아내는 양찬호 작가. 그의 붓끝에서 피어날 새로운 묵향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서예가 양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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